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모든 것'이 시즌4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시즌은 조 골드버그가 영국으로 건너가 존 어섬 무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후더닛 장르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상류층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번 이야기는 과연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요? 연쇄살인범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로맨스와 범죄의 경계에서, 이 작품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후더닛으로의 장르변주와 한계
시즌4는 기존 시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조 골드버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대신,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범인을 찾는 후더닛 구조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구원을 소망하는 조의 심리 변화와 함께 장르적 변주를 꾀한 것인데, 이는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드라마가 진부함을 탈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양날의 검이 되었습니다. 작중에서 후더닛 영화의 클리셰들을 직접 언급하며 메타적인 접근을 보여주었으나, 정작 그 클리셰들을 제대로 비틀지 못했습니다. 1차 사건의 용의자가 2차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전형적인 패턴을 그대로 따랐고, 사건 발생 전 모든 용의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법칙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범인의 정체가 지나치게 예측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리스라는 인물은 등장부터 수상한 뉘앙스를 풍겼고, 조와 지나치게 비슷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보안 채팅 앱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조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는 착한 사람이 되려는 자아와 살인을 부추기는 자아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결국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부류라는 평면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 시즌들이 조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어떻게 해칠지 모르는 긴장감을 제공했다면, 이번 시즌은 이미 벌어진 사건의 뒷공무늬를 쫓는 탐정놀이처럼 느껴져 그 재미가 반감되었습니다. 장르 전환이 참신함보다는 오히려 작품의 본질적 매력을 희석시킨 셈입니다.
영국 상류층풍자와 평면적 캐릭터 묘사
조 골드버그가 미국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한 설정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그에게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은 꿈같은 공간이며, 실제로 그는 문학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합니다. 메리엔과의 삶보다는 못하지만 차선 정도는 되는 시나리오, 그가 스스로 '유럽 휴가'라고 부르는 이 상황은 새로운 시작을 암시합니다.
영국은 미국이 생기기 전부터 부와 귀족 계급이 존재했던 국가입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올드머니, 진정한 상류층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인 것입니다. 이미 뉴욕과 LA의 상류사회를 거쳐온 조에게 영국은 그가 언제나 그랬듯이 상류층을 풍자하기에 완벽한 무대가 됩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에서 온 조에게 근면 성실한 노동이 아닌 대물림된 부를 누리는 영국 상류층은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약점은 새로운 캐릭터들의 평면성입니다. 케이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병적인 수준으로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은 만화 같은 캐릭터로 그려졌습니다. 인플루언서가 협찬받은 목걸이가 마치 천원짜리 공주 세트처럼 비춰지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카메라는 철저히 조의 시선입니다. 부와 타락을 같은 선상에 두고 그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조의 삐딱한 시각이 투영된 결과입니다.
호감 가거나 재미있는 인물이 거의 없다는 점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떨어뜨렸습니다. 상류층을 지나치게 과장되고 캐리커처화하여 묘사함으로써 인물들의 입체성이 사라졌고, 이는 후더닛 장르가 요구하는 복잡한 심리 묘사와 배치되는 선택이었습니다. 조는 그들 사이에 섞여들면서도 그들을 타자화하며 자신의 구원을 꿈꾸지만, 그 역시 책을 많이 읽은 티를 내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경시하는 속물적 면모를 보입니다.
조 골드버그의 변화와 위험한 매력
조 골드버그라는 캐릭터가 가진 가장 위험한 지점은 그를 단순한 괴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적이고 상처받은 인물로 묘사되어 시청자들에게 위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파리에서 메리엔과 재회하는 회상 장면을 보면, 비뚤어진 앵글로 담긴 조의 모습은 그를 비정상으로 여기는 메리엔의 공포 어린 시선을 대변합니다. 당신에게서 버림받은 조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내면 독백은 관객을 그의 논리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만듭니다.
이번 시즌에서 조는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전 시즌이었다면 케이트가 새로운 '당신'이 되었겠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욕구를 자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강의 시간에 티격태격하는 두 학생이 결국 사랑에 빠질 것이라 예측했던 것처럼, 조와 케이트 역시 그들보다 먼저 사랑에 빠집니다. 망나니 같은 상류층 사이에서 유일하게 커리어에 열중하는 케이트는 노동의 숭고함을 아는 사람처럼 보였고, 이는 취향 일관된 조의 레이더에 딱 걸리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케이트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어느 정도 존중해주는 모습, 범인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자제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조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폭력과 범죄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시청자는 그 착각에 쉽게 빠져듭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로날드를 구해주는 조의 모습에서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낍니다. 사적인 정의구현을 하지 않은 조를 지지하고 싶은 마음과, 로날드에게 그에 상응하는 잔인한 벌을 주고 싶다는 욕망이 교차하는 것입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조는 변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타인을 통제하려 합니다. 드라마는 이 짧은 고민의 순간을 통해 시청자들이 조 골드버그 수준의 사이코가 되어보는 체험을 하도록 만듭니다. 집착이 어떻게 로맨스로 오인되는지, 그리고 우리 역시 그 경계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냉정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너의 모든 것' 시즌4는 장르적 변주를 시도했으나 후더닉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평면적인 캐릭터 묘사와 예측 가능한 전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조 골드버그라는 캐릭터가 여전히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은 유효합니다. 연쇄살인범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로맨스는 불편하면서도 흡인력이 강하며, 우리는 그 위험한 매력에 쉽게 빠져듭니다. 파트2에서 이러한 단점들을 뒤집고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GA96dPZvr5s